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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가또


—♪ ♬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 희미하게 골목을 비추고 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 밤을 닮은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의 그는 낡은 멘션만 지그시 바라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그려냈다. 하지만 눈동자 속에는 숨기지 못한 욕망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베란다 끝에 매달려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수수한 남자를 집요하리만치 바라보던 그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뒤를 동생인 린도가 질린 낯으로 따라붙었다. 자그마치 10년이었다. 형인 란의 그러한 모습을 지켜본 지가. 도만과의 항쟁 때, 유난히 눈에 띄었던 체구가 작은 소년.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포기하지 않는 근성 하나는 린도도 인정할만했다. 그렇다고 형이 푹 빠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발그레 볼을 붉히며 ‘나 쟤 가지고 싶어.’ 하고 말하던 형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당연히 바로 들이댈 거라고 생각했지만 란은 어째서인지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때를 기다리듯, 그렇게.

 

어둠의 길로 들어선 자신들과는 달리 민간인이길 선택한 그 소년의 창창한 앞날을 교묘하게 조작해 이러한 낡은 멘션에 머물게 한 것도 그들이었다. 뒷 세계의 주름을 잡고 있는 범천의 간부답게 민간인 하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부모는 사업 부도로 인해 도망치듯 그를 버리고 해외로 떠난 지 오래고, 혼자 남은 그는 비디오 가게에 알바나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도만의 총장이었던 마이키가 범천의 수령이 되고서 뿔뿔이 흩어진 도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형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두 계획에 두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저 녀석은 왜 하필 자신의 형에게 걸려서는. 몰래 설치한 도청장치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타케미치네의 소음을 즐거이 듣고 있는 란을 힐끗 바라보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익숙하게 흔적을 지워내는 린도였다. 언제 사람이 죽었냐는 듯, 시체가 담긴 가방을 끌고 가는 그들의 모습은 한두번이 아닌 듯 꽤나 익숙했다. 이번 타깃이 타케미치네의 옆집 사람이라는 게 운이 좋다며 흥얼거리는 란의 뒤를 걸으며 린도가 물었다.

 

“형, 시작은?”

 

두루뭉술한 물음이었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알고 있는 란이 짧게 ‘곧.’ 하고 말을 뱉어냈다. 린도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냉정한 현실에도 꿋꿋이 웃고 있는 타케미치를 향해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그마저도 형의 질투로 인해 금방 돌릴 수밖에 없었지만. 린도가 그의 미래를 애도하면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 ♬

 

최근 타케미치는 출근하는 것이 즐거웠다. 자신보다 어린 점장의 구박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한달전부터 매일 일정한 시간에 찾아 오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웃을 수 있었다.

 

“하나가키씨. 정리는 빨리 끝내주세요.”

“네! 죄송합니다!”

 

가득 쌓인 비디오를 턱으로 한번 가리키고 지나치는 점장의 뒤로 익숙하게 허리를 숙인 타케미치가 빈자리를 찾아 비디오를 꽂아 넣었다. 힐끗 바라본 시계는 어느새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곧 있으면 그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안녕, 하나가키군.”

“어서오세요, 란씨!”

 

그래, 바로 지금처럼. 항상 보랏빛 머리를 왁스로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 세미 정장을 입고 다니는 그는 역 근처 작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타케미치는 ‘하이타니 란’ 이라는 이름에서 기시감을 느꼈지만 손님들 중에 비슷한 이름이 있었거니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갓 성인이 되고 회사의 부도로 자신을 버리듯 도망 친 부모 때문에 큰 빚더미에 앉은 타케미치가 당장의 안위를 위해 쉼 없이 달려온 나날들은 그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간신히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됐을 때는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내심 사람의 온정이 그리웠던 타케미치가 한없이 다정한 란의 모습에 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퇴근 후 비디오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자신의 낙이라고 란이 말했다. 부모는 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다고 담담히 말하던 그에게 동질감을 느낀 타케미치는 란이 올 때마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대화가 길어질 때마다 점장의 눈치가 보였지만 점장은 어째서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못 본 척 어디론가 향했다. 그러한 이질적인 모습에 몇 번 의문도 생기긴 했지만 한 달째 이어가는 이 일상들은 어느새인가 타케미치를 무감하게 만들었다.

 

그가 주로 빌려 가는 것은 코믹 위주였다. 조용한 집안에서 시끄러운 코믹 영화를 틀어 마음을 달래는 자신과 같아 보여서 몇 번 영화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란은 카운터에 서서 타케미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타케미치는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것을 멈추고 의아하게 란과 시선을 마주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타케미치가 긴장하며 슬그머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때 란이 손을 뻗어 타케미치의 턱을 쥐고 얼굴을 들었다.

 

 

“제, 제가 말이 너무 많았나요?”

“아니, 괜찮아. 그보다 오늘 시간 있어?”

“네? 이, 있어요…”

“그럼 기다릴게. 마무리 하고 나와.”

 

 

자신의 답을 듣지도 않고 뒤를 돌아 가게를 나서는 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두근두근, 심장이 울렸다. 타케미치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란은 남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무척이나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입을 막은 타케미치를 바라보며 점장이 다가왔다. 란이 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다가온 점장은 마무리는 자신이 할 테니 먼저 퇴근하라며 타케미치의 등을 떠밀었다. 당장 이 순간이 중요했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치마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떠나는 타케미치를 뒤로하고 점장은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봉투를 꺼내 들었다. 란이 여기에 오기 시작할 때부터 그를 닮은 한 사내가 자신을 불러내 쥐여주던 돈다발이었다. 란이 올 때마다 모른 척 자리를 옮긴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타케미치까지 가게를 떠나자 끝까지 주시하고 있던 린도도 발걸음을 돌렸다. 형이 사랑에 눈이 멀어 다른 민간인을 죽이는 그런 불상사는 웬만해서 피하고 싶었다.

 

 

—♪ ♬

 

타케미치는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바보처럼 헤헤 웃으며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날 언제 이런 것들을 준비한 것인지 척 봐도 비싸 보이는 호텔로 데려가 반지 케이스를 건네던 란의 모습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와 연인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절절한 그의 말들을 생각하면 다시 한번 심장이 고동쳤다. 남들이 보면 사무친 외로움에 앞뒤 생각 없이 붙어먹었다고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타케미치는 기분이 좋았다. 점장의 이유 없는 잔소리도 기분 좋게 흘려들으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던 연락처에 란의 이름이 있는 것 자체가 타케미치를 설레게 만들었다. 서로의 사심이 가득 들어있는 문자 내용을 훑어보며 행복하게 웃음을 자아내고 있는 것은 란도 마찬가지였다.

 

란은 요 근래 기분이 최고조까지 올랐다. 타케미치의 마음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강경책인 플랜 B까지 고려하고 있던 찰나에 눈물을 글썽이며 반지를 받아주던 타케미치 덕에 급하게 정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신의 계획은 어느 한 만화의 주인공처럼 그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지지 않는 타케미치가 온전히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타케미치의 눈동자를 떠올리면 여전히 아랫배가 뜨거웠다. 지난 10년 동안 충분히 자유를 누리게 해주는 것으로 그의 배려는 끝이 났다. 이제 자신의 새장 속으로 그를 밀어넣을 차례였다. 그는 새장에 들어와서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봐 주겠지. 과거 그를 꽤 예뻐하던 마이키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를 대신할 시체 준비도 완벽했고, 자신을 도와줄 이는 린도 뿐만이 아니었다.

 

“뭘 기분 나쁘게 처웃고 있어?”

“준비는 어때?”

“끝났어. 도와주는 건 이걸로 마지막이다.”

“이자 10% 추가해서 입금해.”

 

범천의 2인자인 산즈와 코코노이가 그의 뒤에 있었다. 거래에 있어 확실한 이들이니 자신의 계획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슬슬 마무리할 때였다. 란은 가지고 싶은 것은 가져야 직성이 풀렸다. 그를 온전히 얻기 위해 얼마나 인내를 해왔던가. 이제 그가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질 그날만이 남아있었다. 말 그대로 광기에 휩싸인 란의 미소를 바라보며 산즈와 코코노이가 쯧, 혀를 차며 자리를 벗어났다. 어쩌다 저런 미친놈한테 걸려서는. 다른 사람의 피를 뒤집어쓰는 일을 하는 자신들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모른 채 절벽 끝으로 떨어질 타케미치의 미래가 조금 안쓰러웠다.

 

 

—♪ ♬

 

오늘따라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음에도 불안하거나 슬프지 않았다. 다른 날 같았으면 당장 내일의 생활에 대해 걱정부터 밀려왔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란을 만나고 난 이후부터 안정된 마음이 타케미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현저히 줄어든 빚 독촉도 한몫했다. 원래라면 밤 낮 가리지 않고 전화가 왔을 테지만 최근 조용하기만 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무엇이 이상한지 몰랐다. 타케미치는 선물해 준 옷을 챙겨 입고 낡은 멘션을 나섰다.란과 만나기 시작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갔다. 작은 회사에 다니는 것치고는 꽤나 비싼 명품들로 치장하고 다니는 란이었지만 그런 것에 무지한 타케미치는 알지 못했다. 타케미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란에게 손을 흔들었다. 타케미치를 발견한 란도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내 전화를 끊고 그와 가까워진 란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타케미치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란의 손에 제 손을 겹쳐 잡았다.

 

“밤이어도 날씨 좋네.”

“그러게요. 이렇게 늦은 밤에 만나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그래도 밤보다 낮이 더 좋지는 않아?”

“저 낮은 별로 안 좋아해요. 사람도 많고.”

“응, 나도 그래. 너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아… 저, 저도요. 란 씨만 있으면 돼요.”

“정말? 기쁘다.”

 

란의 미소가 짙어졌다. 비록 그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닐 테지만 둘이서만 있자는 허락이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란이 타케미치의 뒤로 손을 들었다. 숨어있을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오늘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야심한 시각이 되어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바닷속 깊은 심연을 연상하게 했다. 주차를 핑계로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도로까지 타케미치를 이끈 란이 “잠시만.” 하고 그의 손을 놓았다. 타케미치가 몇 걸음 앞서 나가며 의아하게 뒤를 돌아봤다.

 

“하나가키, 우리 영원히 함께 있자.”

“네?”

 

쾅—!

 

타케미치의 대답이 이어지기도 전에 번호판을 가린 세단 한 대가 달려와 타케미치를 덮쳤다. 다리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피로 흐릿해진 시야를 들어 올렸다. 누군가 차에서 내렸다. 란의 머리와 비슷하게 염색을 한 사내가 타케미치의 앞에 몸을 굽혀 앉았다. 외동이라던 란의 얼굴과 닮아있는 사내를 마지막으로 시야에 담아낸 타케미치가 이내 눈꺼풀을 닫았다.

 

“아, 너무 세게 쳤나?”

“린도, 다른 사람이었다면 죽었을 거야.”

“살아있으면 됐잖아.”

 

린도가 차에서 내렸다. 사람과 그를 대신 할 시체는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다. 코코노이를 통해 설치된 CCTV 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운전석에 올라타는 남자를 바라보며 란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여기 사고가 나서요.”

 

이제 경찰이 오기 전에 타케미치를 데리고 자리를 뜨는 일만 남았다. 드디어 제 손안에 떨어진 타케미치를 조심스레 품에 안아들며 란이 유유히 현장을 벗어났다. 뒤처리는 자신의 조력자들이 잘 해결해 줄 것이었다.

 

 

—♪ ♬

 

오늘을 위해 마련한 저택이었다. 기이하게 꺾였던 그의 발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여도 앞으로 혼자 걷지 못할 것이었다. 망가진 손도 란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지. 은은하게 퍼지는 알코올 향을 맡으며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숨을 몰아쉬는 타케미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일주일째 미동하지 않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꾹 닫혀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열리고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말간 눈동자가 란을 향한다. 몇 번 달싹거리던 입술이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 낼 때쯤, 란은 온몸을 휘젓는 쾌감에 부르르 몸을 떨며 입을 틀어막았다.

 

누,구…

 

뜻 밖의 수확에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웃음을 겨우 참아내며 애써 슬픔을 그려냈다.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내가 지켜줄거니까.”

 

나의 새장 속에서, 영원히.

 

비로소 행복한 듯 웃는 란의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린도가 란을 닮아 있는 흑색의 장미꽃 한 송이를 입구에 두고 방안을 빠져나왔다. 어떤 형태여도 자신의 형이 행복하다면, 그것이 인도를 벗어났다 하여도 아무런 상관없었다. 그저 사람을 잘 못 만난 그의 탓만 있을 뿐.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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