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tulips-g2dd420457_1920.jpg

빨강 – 사랑의 고백

하양 – 새로운 시작

분홍 – 사랑의 시작

검정 – 저주

글쓴이 : 타브

    타케미치의 고향에는 아주 아름다운 들판이 있었다. 그곳엔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살랑살랑 흩날리며 아름다운 색깔로 들판을 물들이는 곳이었다. 타케미치는 그곳이 좋았다. 특히 그곳에 핀 튤립을 가장 좋아했다. 튤립을 보면 한 소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이키. 그곳에서 만난 소년의 이름이었다. 왼쪽 목 부분에 튤립 문양을 지닌 아름다운 소년. 깊고 검은 눈동자를 빤히 볼 때면 눈에 빠져버릴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고 약간 핑크빛을 띠는 금발의 머리색은 햇빛 아래에서 아름답게 반짝였다. 자신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던 소년. 그래. 타케미치는 그 소년을 사랑했다. 하지만 마음을 제대로 전해보기도 전에 타케미치는 고향을 떠나게 됐고 그렇게 타케미치의 첫사랑은 끝나는 듯싶었다.

 

   “와! 여긴 하나도 안 변했잖아?”

 

    타케미치는 떠난 지 8년 만에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과거 부모님의 사정으로 마을을 떠났던 타케미치는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에 무척 들떠 있었다. 길거리의 풍경은 변함없었고 어릴 적 자주 들리던 과일가게의 아주머니와 빵집 아저씨, 책방 할아버지도 그때와 똑같았다. 타케미치를 알아본 동네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타케미치 또한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8년이라는 세월 동안 타케미치는 몰라보게 성장해있었다. 항상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엿한 용병이 되어 몬스터를 잡고 모험을 다니고 있는 타케미치. 그런 타케미치를 보며 마을 어른들은 감회가 새롭다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타케미치와 동료들이 이번에 이 마을로 온 이유는 의뢰 때문이었다. 마을에 퍼진 괴물의 정체를 조사하여 정보를 얻고 가능하다면 퇴치를 하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타케미치 또한 이곳에서 살 때 괴물의 소문에 대해 들었었지만 그런건 미신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미신이라고 이야기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괴물의 처치라니. 조금 의아했지만, 자신의 고향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의뢰를 수행하는 것이 쉬울 것 같고 궁금하기도 해서 이 의뢰를 수락했었다. 본격적으로 탐색에 나서기 전, 타케미치와 동료들은 우선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하루는 자유롭게 쉬기로 결정했다. 각자 볼일을 보러 떠나고 타케미치도 오랜만에 방문한 마을 거리를 구경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자주 가던 꽃밭이 떠올랐고 타케미치는 곧장 들판으로 향했다. 들판에 도착한 타케미치.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는 들판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바싹 메마른 땅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푸른빛은 온데간데없고 버석한 흙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타케미치는 조심스레 한쪽 무릎을 꿇고 흙을 들어 올렸으나 파삭하고 부서져 흩어졌다. 자연적으로 메말랐다고 하기엔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현상에 타케미치는 이상함을 느꼈다.

 

    추억의 장소를 기대하고 왔지만, 이전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타케미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타케미치의 눈에 잡힌 꽃 한송이. 이런 땅에 꽃이? 타케미치는 꽃을 향해 다가가 자세히 살펴봤다. 튤립이었다. 그것도 아주 새까만 튤립. 검은색 튤립? 타케미치는 자기도 모르게 튤립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무언가의 힘이 발동하여 강한 전류가 타케미치의 손에 흘러들어왔다.

 

   “뭐야?!”

 

    타케미치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 손을 어루만지고 다시 꽃을 살펴봤지만 검은 튤립은 온데간데없었다. 환상? 환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선명한 충격에 타케미치는 찝찝했지만 이내 마을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 밤, 마을 주점

 

    타케미치와 동료들은 마을에서 인기 많은 주점에 자리를 잡고 여행의 여독을 풀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생각에 잠겨있는 타케미치.

 

    ‘튤립이라... 그러고 보니 전에 마이키에게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준 꽃이 붉은 튤립이었는데. 마이키군은 잘 지내려나.. 아직도 이곳에 있을까?’

 

    붉은 튤립의 꽃말이 사랑의 고백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꽃집에서 꽃을 사 마이키에게 달려갔던 기억이 났다. 그땐 순수했는데. 그러고 보니 검은 튤립의 꽃말은...

 

    “저주..?”

 

    “뭐야 타케미치? 저주에 대해 뭐 아는거 있어?”

 

    갑자기 조용해진 테이블에 고개를 들자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집중된 시선에 타케미치는 당황하며 그냥 혼잣말이었다고 얼버무렸다.

 

   “뭐야. 난 또 뭔가 알고 있는가 했네.”

   “그러게, 김샜어.”

   “왜 뭐가?”

 

    동료들은 너 우리 이야기 안 듣고 딴생각했지! 하며 핀잔을 줬지만 타케미치는 웃으며 미안하다고 그래서 무슨 얘긴데 저주랑 관련이 있는 거냐고 물어봤다. 이야기는 이러했다. 오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괴물에 대한 소문을 좀 수집해 봤는데 그 괴물이 저주받은 숲에 산다는 것이었다. 저주받은 숲에는 각종 몬스터가 나오는데 그 몬스터를 다스리는 것이 소문의 괴물이라고 한다.

 

   “그 괴물한테 죽임을 당한 모험가나 마을 사람들이 엄청 많다고 하더라구”

   “괴물이랑 만나서 살아온 사람이 없데!”

   “그래? 그럼 그 몬스터를 조종하는 괴물의 존재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한 사람이 아주 운 좋게 빠져나왔는데 자기가 그곳에서 괴물을 조종하는 사람을 봤다고 했다더라구.”

   “살아 나온 사람이 없다며?”

   “응. 그 사람 그러고 죽었거든.”

   “허...”

   “아무튼 그 인상착의가 소름끼치게 오싹한 검은 눈과 약간 핑크빛이 도는 금발이라고 했나? 근데 온통 피범벅이라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고 하더라고.”

   “...”

   “맞아 그리고... 그 뭐더라... 아! 튤립! 괴상한 튤립 문양이 목에 그려져 있었대!”

   “맞아 맞아 그리고 숲 밖으론 절대 안 나온다고 하더라고!”

 

    처음엔 흥미롭게 들으며 자신이 없던 사이 마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던 타케미치는 괴물의 묘사를 듣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검은 눈동자에 핑크빛 금발머리... 여기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튤립 문양이라는 말에 타케미치는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 외양은 타케미치의 옛 친구이자 첫사랑이었던 마이키의 생김새와 너무나도 흡사했으니까. 8년이 지난 지금 마이키의 모습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어쩐지 타케미치는 이들이 말하는 ‘괴물’이 마이키일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타케미치는 몰래 숙소를 빠져나와 괴물이 산다는 숲으로 왔다. 원래도 음산 숲이 새벽에 오니 더 스산해 보였다. 타케미치는 마음을 다잡으며 숲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숲을 얼마나 헤맸을까 슬슬 저택이 나올 법도 한데 저택은커녕 주변에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왔던 길을 찾을 수 없어 완전히 길을 잃고만 타케미치. 그냥 나중에 동료들과 함께 올 걸 하고 후회하던 그때 풀숲에서 소리가 들렸다. 혹시 사람인가 싶어서 소리가 난 방향으로 빛을 비추며 다가갔지만, 그 소리의 정체에 발걸음을 멈추고 마는 타케미치.

 

    그곳엔 처음 보는 짐승형 몬스터가 멧돼지를 잡아먹고 있었다. 몬스터의 주변에는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살기가 가득했다. 점점 숨이 막혀오는 타케미치. 살기? 아니. 이건 살기랑은 달라 좀 더 검고 진득한 기운... 타케미치는 기척을 죽이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멧돼지를 먹다 말고 타케미치를 바라보는 몬스터. 눈이 마주치자 느껴지던 기운과 압박감이 더 강해졌다.

 

   도망쳐야..!

 

   하지만 타케미치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밑에서 끌어당기는 것 마냥 발이 움직이지 않는 타케미치. 몬스터는 타케미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마주하자 보이는 반대편 모습. 그 외형은 무척 끔찍했다. 군데군데 살이 녹아내려 뼈가 보였고 눈에는 이상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있었다.

 

   크르르륵.... 크아아와악!!!

 

    포효하며 달려오는 모습에 타케미치는 반사적으로 두 눈을 꼭 감았다. 곧 끔찍한 고통과 함께 쓰러질 것이라는 타케미치의 예상과 달리 몸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살며시 눈을 뜨자 보이는 한 사람의 등. 그 사람은 한 손으로 몬스터의 목을 잡아 비틀고 있었다.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몬스터. 손을 타고 몬스터의 피가 질척하게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침을 삼키는 타케미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얼어붙은 몸은 입을 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몬스터를 멀리 던져버린 후 뒤를 돌아 타케미치를 바라봤다. 움찔하는 타케미치. 몇 걸음 다가오다 말고 멈추더니 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기는 남자.

 

   “오랜만이네 타케밋치.”

   “에..? 그 이름은...”

 

    후드 속에 있던 남자는 타케미치의 첫사랑. 마이키였다. 오랜만에 만난 마이키는 여전했다. 아니 여전한가..? 외관적인 부분에서는 그랬다. 머리카락이 길어지고 키가 컸지만 어릴 때를 똑 닮아있었다. 하지만 마이키가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똑같지 않았다. 전보다 가라앉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특히 깊고 음울해진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이키는 타케미치를 향해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타케미치는 어쩐지 그 미소가 무척 쓸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마이키의 권유로 근처에 있는 마이키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타케미치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소문의 저택이었다. 마이키는 들어오라고 하며 집안으로 안내했다. 조용히 걸어가는 두 사람. 달라진 마이키의 분위기와 첫 만남에서의 강렬함 때문일까 분명 반가웠지만 타케미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아.. 그게 괴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의뢰받아서 왔어요.”

 

   괴물이라는 단어에 움찔하는 마이키.

 

   “그래? 어떤 의뢰인데?”

   “괴물의 정보를 수집하고... 가능하다면 토벌해달라는... 그런 의뢰였어요.”

   “그렇구나... 타케미치는 그때 말한 데로 멋진 모험가가 됐나 보구나.”

 

    마이키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듯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그.. 마이키군은 이런 곳에서 뭐하는 거에요? 마이키 군도 전에 저처럼 자유로운 모험가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요! 아까 보니까 엄청 강하던데! 분명 엄청난 모험가가 될 거예요!! 어쩌면 강한 모험가들에게만 주는 은패나 금패를 받을지도 모른다구요!”

   “그래?”

 

    마이키는 그저 타케미치의 말에 작게 웃으며 맞장구를 칠 뿐이었다. 과거에 함께 꿈을 이야기 하던 당당하고 멋진 모습은 어디 갔는지 타케미치는 마이키의 반응에 조금 속상했던 것 같다. 문 앞에 도착한 두 사람. 타케미치가 이 방이 뭐냐고 묻자 마이키는 보물 방이라는 한다디만 남기고 문을 열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하게는 방 한가운데 놓인 탁자와 의자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탁자에 가까이 다가가자 낮에 봤던 것과 똑같이 생긴 검은색 튤립 한송이가 있었다.

 

   “이 꽃은...”

   “기억나? 네가 떠나기 전날. 나에게 튤립을 줬었잖아.”

   “네... 하지만 그건..”

 

   분명 새빨간 튤립이었는데... 타케미치는 끝말을 삼켰다. 검은색 튤립은 절대 자연적으로 나지 않는 색으로 오로지 저주받은 꽃에서만 나오는 색이었다. 검은 튤립... 저주... 소문의 괴물... 저택...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이 명확했다. 마이키는 꽃을 쳐다보며 그날을 추억했다.

 

   “넌 붉은색 튤립을 나에게 주고는 곧바로 떠났어. 난 떠나는 너를 그저 쳐다보고 있었지. 나에겐 너를 잡을 용기가 없었거든. 대신 네가 준 꽃을 봤어. 무척 아름다웠는데. 붉게 물든 너의 얼굴이 떠올랐거든.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새까맣게 물들어버리더군.”

   “마이키군... 역시 소문의 괴물은...”

   “응. 맞아. 마을에서 들은 괴물의 이야기는 나일거야.”

 

    어째서...

 

    타케미치는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마이키의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물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건들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몰라 타케미치가 고민하고 있던 그때. 마이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돌아가. 타케미치.”

   “네?”

   “들었잖아? 난 괴물이야. 너랑은 이제 달라. 아무것도 모르고 너와 놀던 그때의 내가 아니야. 오랜만이니까... 오랜만이니까 데려온 거야 두 번은 없어. 이제 돌아가. 그리고 이 마을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마이키군!! 갑자기 떠나라니요!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마이키는 타케미치의 간절한 외침에도 단호하게 돌아가라 할 뿐이었다.

 

   “그 괴물이라는 소문 때문인가요? 분명 뭔가 오해가 있던 거죠? 분명 틀림없이 뭔가 오해에요! 저랑 같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

   “마이키군!!!!”

 

    쉬익-

 

    날카로운 검이 타케미치를 스쳐 지나갔다. 칼이 지나간 타케미치의 뺨에 붉은선이 생기며 피가 송글송글 맺혔다.

 

   “마이키군...”

   “돌아가. 이건 경고야.”

   “싫어요!”

   “돌아가!!”

   “왜! 돌려보내려는 거에요! 겨우.. 겨우 만났는데...”

   “왜? 왜냐고? 그러는 너야말로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난 저주받았어! 그것도 아주 끔찍한 저주. 머릿속에서 계속 속삭여! 죽이라고. 피를 달라고. 내가 죽인 괴물, 사람들의 비명이. 살려달라고. 죽여달라고. 거부할 수 없어. 이게 내 운명이야. 평생 나를 따라다닐 운명. 이건 저주가 아니야. 그래... 나의 본성이다. 내 본성이 저주라는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야. 난 이제 네가 알던 마이키가 아니야.”

 

    마이키는 소리쳤다. 아니, 울부짖었다. 그동안 묵혀놨던 감정을 터트리듯이 마이키는 울었다. 아니, 웃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마치 우는 것처럼 보였다. 마이키의 흥분과 동시에 목덜미의 튤립 문신이 검붉게 빛났다. 저거구나. 저 문신이 그 저주구나. 첫 만남부터 가지고 있던 문신은 어릴땐 아주 자그마했지만, 지금은 왼쪽 목을 다 덮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랬던 걸까. 나와 만날 때도 항상 이런 고통을 견디면서 만났던 걸까. 그래서 자유를 원했던 걸까.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어느덧 마이키의 귀에는 저주의 속삭임이 더 강력해졌다. 타케미치를 죽이라고 죽여서 그 피를 온몸에 적시자고. 좋아하는 사람의 피는 어떤 색인지 궁금하지 않냐고. 타케미치를 죽이라는 소리와 끔찍한 비명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였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타케미치를 죽여.

 

   “죽여..”

 

    마이키는 목소리에 잠식당해 이성을 잃고 타케미치에게 달려들었다. 타케미치는 서둘러서 방어막을 펼쳤다. 좀 전과 달리 무사히 마법을 사용해 냈지만 마이키의 힘에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금 버티는 듯싶던 방어막은 금세 깨지고 말았다. 아슬아슬하게 마이키의 검을 피한 타케미치. 마이키의 검이 바닥을 내리쳤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바닥에 엄청난 자국이 남았다.

 

   ‘저 칼에 한 대라도 맞으면 끝이야..!’

 

    나름 준수한 모험가답게 타케미치는 마이키의 공격을 잘 피했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버틸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 피했지만 결국 공격을 허용하고만 타케미치. 찔린 옆구리에서 피가 흘렀다. 타케미치는 허리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마이키군! 정신 차리세요!!”

   “...”

 

    하지만 타케미치의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상처 때문에 크게 움직일 수 없던 타케미치는 결국 궁지에 몰렸다. 등 뒤에는 벽, 바로 앞에는 마이키의 검이 있었다.

 

   “타케미치. 가라 했을 때 가지 그랬어... 그럼 내 손에 죽을 일도 없었을 텐데.”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그때 마이키의 뒤편에 있는 꽃을 발견한 타케미치. 마치 마이키의 문신처럼 검붉은색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게.. 어쩌면..

 

    타케미치는 무언가 결심한 듯 크게 심호흡했다. 기회는 단 한 번 마이키가 작별을 고하며 칼을 휘두르려던 그때, 타케미치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던 공격 마법을 마이키에게 날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급히 방어하는 마이키. 그 틈을 타 타케미치는 꽃을 향해 달려갔다. 타케미치의 두 손에 쥐어진 검은 튤립. 타케미치의 예상대로였는지 꽃에서 강력한 저주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 꽃이 저주의 핵이다!!’

 

    타케미치는 온 힘을 다해 꽃을 파괴했다. 마지막 마력까지 쥐어 짜내서 꽃에 불어넣었다. 타케미치의 마력은 예전부터 새하얀 순백의 색을 띠며 드물게 정화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적은 마력량에도 모험가로서 활약할 수 있었다.

 

    쩌저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마이키의 문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방안에 커다란 굉음이 가득 찼다. 그 속에서 마이키는 고통스러운 듯이 울부짖었다. 타케미치는 신경 쓰였지만 꾹 참고 꽃에 집중했다.

 

   ‘부셔져!!!’

 

    쩌적-

 

   ‘제발!!!!’

 

    챙-

 

   “제발!!!!!!”

 

    챙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튤립이 하얀빛에 둘러쌓였고 마이키의 목에 있던 튤립 문양이 깨졌다. 빛은 점차 커지더니 방안의 모든 것을 삼켰고 타케미치는 그 빛을 보며 자신의 눈이 감기는 것을 느꼈다.

 

 

    빛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마이키와 타케미치 밖에 남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 속 아침이 밝아왔다.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타케미치의 눈을 간질였다. 그에 못 이겨 눈을 뜨는 타케미치.

 

   ‘여기가 어디지... 내가 왜.. 아!’

 

    타케미치는 마이키를 떠올리고는 곧장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이키가 쓰러져 있었다. 타케미치는 마이키에게 다가가 자신의 무릎에 마이피를 눕혔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잠들어있는 마이키. 목에 있던 튤립 문양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타케미치는 그 모습을 보며 다행이라고 울먹였다.

 

   “타케밋치. 고마워.”

   “마이키군!”

 

    언제 눈을 뜬 건지 마이키가 타케미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케미치는 마이키를 꽉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마이키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에 눈을 감았다. 그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하얀 튤립.

 

   “어!”

 

    타케미치는 떨어지는 튤립을 살포시 두 손으로 잡았다.

 

   “튤립이 새하얘졌어요.!”

   “그러게.. 저주가 풀린 걸까..?”

 

    타케미치는 새하얀 튤립을 보며 신기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타케미치를 보며 미소 짓는 마이키.

 

   “마이키군 그거 아시나요? 하얀색 튤립의 꽃말은 새로운 시작이래요.”

   “새로운 시작...”

   “어쩐지 지금 상황이랑 너무 딱 맞지 않나요?”

 

    타케미치는 마이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이키군도 저와 함께 모험가를 해봐요! 분명 마이키군은 엄청난 재능이 있어요. 제가 장담할게요! 모험 선배로서 제가 이것저것 알려드릴게요. 아! 여행하면 꼭 가봐야 하는 도시가 있는데 그게 모험가들한테는 꿈의 도시로...”

 

    타케미치는 앞으로 마이키와 함께 여행을 다닐 생각에 신이 나서 같이 하고 싶은 거 하기로 했던 것 유명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그런 타케미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이키.

 

   “타케밋치. 고마워.”

   “네?”

   “나를 구해줘서 고마워.”

 

    타케미치는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무안하게.. 분명 제가 아니었어도 마이키군의 사정을 알았으면 누구든 마이키군을 도왔을 거예요...”

   “아니. 날 구할 수 있는건 너뿐이야.”

   “네? 어째서 그렇게 되냐구요...”

 

    마이키는 타케미치가 꽃에 마력을 불어넣는 순간 확신했다. 아. 이 사람이구나. 나를 구할 사람. 나를 구할 유일한 사람. 나만의 구원자.

 

    타케미치는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지만, 귓불이 붉어지는 건 숨길 수 없었다. 그런 타케미치를 보며 웃는 마이키.

 

   “앗! 마이키군 왜 웃는 거예요! 저 때문이죠! 그렇죠!”

   “아니~ 타케밋치 때문 아닌데?”

 

    그럼 왜 웃냐며 타케미치는 볼을 부풀렸지만, 마이키는 자기도 모르겠다며 타케미치를 놀리는 마이키. 모험에 안 데려갈 거라느니 데려가면 밥이랑 설거지 혼자 다 하라느니 유치한 말이 오갔지만 두 사람의 얼굴을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타케미치의 무릎에 올라가 있던 하얀 튤립에 미약한 변화가 생겼다. 끝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튤립. 두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한참을 그곳에 앉아 투닥거렸다.

 

    분홍색 튤립의 꽃말은 사랑의 시작이었다.

 

 

The End.

뒤로-removebg-preview.png
@ 사이트 하단의 출처를 표시한 이미지 외에는 모두 저작권 없는 이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bottom of page